인간의 정의는 무엇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인생 영화

공각기동대 애니메이션을 소개합니다.

요즘 스칼렛 요한슨 주연으로 영화로 개봉되었는데, 실제 애니메이션 광팬으로서

영화가 애니메이션의 퀄리티를 따라올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올레 영화관에서 1,600원으로 시청할 수 있어서

오랜만에 추억을 더듬으며 다시 감상했습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를 접하는 것은 2002년 당시 대학교 만화 동아리 친구가 빌려준 DVD를 통해서입니다.

20년 전 1995년도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 이렇게 철학적이고 심오한 내용을 담을 수 있는지 놀라웠습니다.

암울한 시대배경과 기괴스러운 음악, 그리고 인간이지, 사이보그인지 모를 정체성의 혼란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는 영

화는 마치 미래가 아닌 어둡고 우울한 현실을 비추는 영화 같았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는 생명공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가운데, 양, 소, 개들이 복제되고 있고, 인터넷이 널

리 퍼지면서, 가상공간 속의 맺어지는 관계가 또 다른 삶의 일부분이 되어가는 시대였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IMF

의 영향으로 경제난 속에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할 겨를 없이 스펙을 쌓아야 하는 시기였습니다.

이 때 개봉한 공각기동대는 정처 없이 부유하듯 살아가는 저에게 큰 경종을 울리는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울리는 경종은 20년 보다 지금이 훨씬 큽니다.

알파고의 등장으로 우리나라에게서는 인류가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에게 지배를 당하는 것은 아닌지,

인공지능과 인간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지금이 

영화속의 내용과 점점  닮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공각기동대를 통해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개인 즉 나를 정의 내리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것은 공각기동대에서 고스트에 주목해야하는 이유입니다.  

영화에서는 인간과 사이보그를 정의하는 첫번째가 고스트 즉 정신을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였습니다.

온몸이 사이보그지만 전뇌를 가지고 있고 자신만의 고스트가 있었던 9기동대 모토코 소령과 바트는 인간이라고 정의합

니다. 하지만 해킹을 통해 인간의 전뇌의 기억조차 조작이 가능하다 것을 알게 된 모토코 소령은 자신의 기억을 의심하게

되면서 끈질지게 인형사를 쫒아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어쩌면 현실 속의 개인 즉 저도 모토코 소령과 같은 혼란 속에 있는지 모릅니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 속에서는 인터넷 속의 진실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정보들을 통해서 저의 사고가 형성됩니다.

기존에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도 그 뿌리부터 흔들리는 시대입니다.

얼마든지 한 개인의 생각을 사회가 세뇌시킬 수 있다는 것을 요즘 정치적 상황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고스트는 있지만 얼마든지 외부에 영향을 많이 받고 조작될 수도 있는 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본 영화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바로 공각 기동대의 모토코 소령이 인형사에 진실,

바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전차 위해서 몸이 으스러지도록 전차 문을 여는 장면입니다.

몸부림쳐서 그 문을 열어야지만 자신의 정체성과 마주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인간이라는 정체성, 나의 정체성에 대해 힘들지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봐야 겠습니다.


오늘은 어떤 영화를 볼까 네이버 영화 평점을 검색하다가 못보던 이름인데

상위에 랭킹된 것을 보고 4500원 결재하고 영화를 보았다.

일단 실제 인물 이야기라 호기심이 발동했고

다큐멘타리 형식이라니 영화가 담백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영화의 주인공 이윤혁은 26살의 나이에 말기암 항암치료를 그만두고 평소에 꿈꾸어 왔던

뚜르 드 프랑스라는 자전거 대회에 참가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지원해 줄 투자자, 영화 감독, 의사, 현지 코디네이터, 자전거 전문가, 자전거 동행인? 을 모아

여차저차하여 프랑스로 떠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우정을 그대로 담아낸 영화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감동을 받았는데 그것이 무엇 때문이지 좀처럼 알 수 없었다.

이윤혁이라는 청년이 보여주는 삶에 대한 진정성, 긍정적인 마음이 존경스러우면서도

시한부 상황에 처해진 그에게 연민이 함께 느껴져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의 도전이 멋지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 영화가 선사하는 감동은 보통의 심파영화와는 다른다.

영화의 주인공이 암에 걸리면 주인공을 비롯하여 주변 사람들이 울면서 시작하는데

이 영화는 눈물이 나오는 장면이 딱 한 번 있고

시종 일관 주인공과 주변 사람들은 웃고 있다.

물론 일이 안 풀릴 때는 다투기도 하지만, 그것은 여행을 가면 언제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특별하게 이상하지는 않았다.

주인공들이 웃고, 다투고, 도전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데

보는 나는 더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웠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 순간이 되면 나도 뚜르, 내 인생의 최고의 49일에 나왔던 주인공처럼

담담하고 맞이하고 싶다.

물론 내 주변의 가족들과 친구들도 영화에 나왔던 사람들처럼

울지 말고 곁에서 담담하게 버텨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싶지 않겠지만 말이다.




행목한 엠마 행복한 돼지 그리고 남자 -클라우디아 슈라이버


오랜만에 읽은 소설책이다. 바쁜 일상에 치여 여유롭게 소설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는데 짬짬이 이동하는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고 눈물이 날 뻔했다.

엠마는 시골촌뜨기다.  외롭게 자신의 농장을 꾸려나가는 외톨이였다.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가정에서 자란 엠마는 여자이기보다는 일꾼으로 길러진 억척스러운 인물이다. 하지만 억척스럽다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순수하고 매력적인 면을 가진 여성이다. 자신이 키우는 돼지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 고통 없이 생을 마감하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돼지를 도살했다.

그렇게 살아가는 엠마의 삶에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막스라는 인물이 나타난다. 평생 하고싶은 것 못하고 틀에 맞추어 살다가 처음 시한부라는 것을 알고 일탈을 저지르면서 엠마를 만나게 된다. 두사람은 너무나 다르지만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해주면서 사랑을 하게 된다. 결국 막스는 엠마의 도움으로 고통 없이 죽게 된다.

나는 막스를 만나 엠마가 농장을 벗어나서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우리는 누구나 변화를 두려워하며 기존의 살던 방식을 고집하게 된다. 나이가 들면 더욱 심해진다. 어쩌면 자유보다도 역할이 있는 삶을 우리는 원하고 있을 것이다. 엠마 또한 그랬을 것이다. 엠마의 역할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닌 길들여졌던 것이다. 평생 농장을 벗어난 적 없던 엠마는 농장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막스가고 싶어했던 멕시코로 떠난다. 난 마치 내가 엠마가 되어 떠난 것 같이 행복하고 홀가분했다. 8년 동안 일한 직장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가지기로 했지만 그렇게 행복할 것 같아던 내가 너무 불안하고 외로웠던 것이 이해가 안되었다. 하지만 그 이유를 엠마를 통해 알게 되었고 엠마를 통해 육체적인 해방감과 동시에 정신적인 해방감이 느껴졌다. 물론 다시 약간의 두려움과 외로움이 있지만 말이다.


나는 책이 너무 재미있어 영화도 찾아서 봤다. 역시 책보다 못한 영화였다. 평점이 높았지만 아마 책을 먼저 읽은 분이하면 영화가 책보다 못하다고 느낄 것이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주인공들이 너무 잘생겼고 전개가 빨랐으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떠나는 내용이 다 사라졌다. ㅠㅠ

아무튼 엠마는 이제 어디에 가서도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 것 같고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나를 포함한 갇혀 있는 엠마에게 두려움에서 벗어나서 행복의 길로 떠나라고 알려주고 싶다.






꼴찌도 행복한 교실 독일교육 이야기

박성숙(무터킨더)지음

 

 

 

 

독일에 대한 믿음이 있다. 2차 세계대전 전범 국가였지만 그 잘못을 반성하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리고 동독과 서독의 통일이라는 어려운 일을 해내었고 2차세계대전 이후 경제성장도 탄탄하게 만들었다. 자동차하면 독일이며 독일제 기계는 무엇이든 믿음이 간다. 심지어 우리집에 우연하게 바르게 된 스킨 샘플조차 믿음직하고 솔직하여 어디것인가 보았더니 독일제였다. 독일 그렇다면 교육은 어떠할가? 체계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채점하고 우수하게 길러낼 것 같은 교육프로젝트 내 예상을 모두 뛰어넘는다. 독일은 대학교까지 평준화되어 우리나라처럼 청소년 시기에 경쟁해서 좋은 대학을 가야할 이유가 없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청소년시기에 행복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여유를 가지며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진다  성교육조차 너무 똑부러지고 확실하게 하는 독일, 우리나라처럼 피할 것 다 피하고 돌려서 이야기 하는 성교육은 없다. 그래서 더욱 믿음이 가며 성소수자에 대한 교육까지 해준다고 한다. 이렇게 드러내 놓고 가르치는 성교육 그것은 갈수록 성경험이 중고등학교 시절로 앞당겨지는 우리나라도 어쩔수 없이 밟아가야 하는 수순일지도 모른다  독일은 무엇이든 잘한다.” 라는 것은 분명 교육에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치열하게 공부하고 경쟁하고 시험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렸을 때부터 시작하는 철학이였다. 우리나라 철학교육은 지식암기 이해 수준 교육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학 시절에 교양으로 들었던 철학강의는 마치 고등학교 수업의 연장이였다. 깊은 사고력을 길러줘야하는 철학 강의가 공포의 암기 과목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나라는 학창시절 철학의 부재가 바로 사고력의 부재로 이어지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나 자신이나 사회현생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바로 이 사고력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다. 비판의식 결여, 사고력 결여, 창의성 결여, 모두가 우리나라 교육에서 사고력을 길러주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우리나라 교육의 근본 치료점을 살펴본 것 같았다. 다른 나라 교육을 무조건 좋다고만 할 수 없지만 배울 것은 배우는 것이 좋다.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멜라니 조이 지음)


10년 전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동물에 대한 나의 편견은 많이 바뀌었다.
인간과 이질적인 종으로서 생각이 아예 없는 개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아지도 우리와 똑 같았다. 
나의 사랑과 보호가 필요하며, 또 어떤 때는 한없이 믿음직한 나의 편이 되어주기도 한다.
질투 호기심 식욕을 가지고 있으며 예절 복종 애교 사랑이 가득한 하나의 생물체였다.
그리고 긴 세월 함께 해오면 쌓아온 교감은 개가 아니라 가족 친구와도 같은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네발로 다니며 코에는 물이 촉촉히 젖어있는 이질적인 종인 개가 내가 행하는 작은 것들에 반응하며 기뻐하고 슬퍼하는 그 감정들을 하나씩 발견해 나갈 때는 나는 생명의 신비함까지 느껴왔다. 이러한 발견들은 개에 대한 존중에서 더 나아가 다른 생물에게 까지 확대되었다. 
어디선가 아이들이 생각없이 잠자리를 잡아다가 날개를 뜯는 장면을 보면 그 잠자리의 두렵고 고통스러운 감정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달되었다.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동물확대의 장면을 보면 잔학 행위의 주체들이 너무 원망스럽고 무지해보여 분노감마져 느꼈다.

하지만 이런 아프고 고통스러운 감정은 잠깐일 뿐 눈에 보이지 않게 되자 곧 잊어버리는 어쩔 수 없는 잔학 행위의 주체인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을까?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철저하게 외면해온 나의 모순적인 동물애호를 비난하고 있었다.

산채로 가죽을 벗겨야 상하지 않는 고급 가죽을 얻을 수 있다.....나는 결국 가죽 신발 매니아였다.
맛있는 소고기를 위해 6개월 이상의 송아지는 마취 없는 거세와 뿔제거를 당하며 우리에 갇혀 비정상적이 살찌기에 들어간다. .....나는 결국 기름이 적당히 빡힌 소고기를 좋아한다. 
어린 닭의 부리를 자르고 성장호르몬을 주사해 빨리 자라게 한다. ....나는 여름에 살이 통통하게 오른 영계백숙을 즐겨 먹고 있다. 
폭60cm로 안되는 우리에서 돼지는 새끼들을 낳고 오물이 뒤섞인 장소에서 새끼 돼지들은 어미의 젖을 빤다....나는 결국 소고기보다 싸고 맛있다는 이유로 돼지고기를 즐겨 먹었다. 

무감각하면 해질수록 '어쩔수 없다'고 생각할 수록 그만큼 정신적 스트레스도 쌓인다. -112p
육류에 과한 방대한 신화들이 있지만 그 모두는 내가 '정당화의 3N'이라는 것과 어떤 방식으로든 연관되어 있다. 즉, 육류를 먹는 일은 '정상적이며(normal), 자연스럽고 (natural), 필요하다 (necessary)'것이다. ...3N의 본질적인 임무는 동물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행동에 대한 내재한 모순을 감추고 우리가 어쩌다 그걸 알아채게 되면 그럴싸하게 해명하고 넘어가는 정신적으로 정석적인 눈가리개 역할을 한다. -133p
인간의 생명이 다른 종의 생명보다 훨씬 귀중하기 때문에 인간의 밉맛을 다른 몇몇 종의 생존 욕구에 우선시키는 일이 지극히 당연하다는 사고 방식이다. -145p
우리는 제 1장에서 의식의 이 단절 부분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그것은 우리 인식의 잃어버린 연결고리로, 자신이 먹는 고기를 그 출처인 동물과 연결시키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이 공백은 우리의 혐오감과 공감을 차단한다. 고기를 먹는 문제에서 우리의 가치관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깨닫지 못하도록 막는다. 증언하기는 우리를 진실과 결합시키기 떄문에 그 공백을 메운다. -189p

작가의 말처럼 나는 동물을 사랑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30면 동안 꾸준히 육식을 해왔다는 것을 해왔다. 이처럼 나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모순을 이제야 깨닫게 된것이다. 보이지 않는 다고 해서 불편한 진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우리는 깨달았을 때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내 자신의 채식을 하면서 이제컷 불편하고 모순되었던 나의 삶을 바꿔보고자 한다. 작은 아기 돼지를 송아지를 그리고 병아리들을 더이상 먹지 않음으로 해서 나의 마음은 더욱 편해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
이책을 읽고 채식을 시작한 것이 2주 정도 되었다. 갖은 채소를 썰어 곡식과 볶으면서 더이상 고기를 굽기 전 빨간 피들을 보지 않고 건강한 식단을 만들어 가는 나의 작은 실천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이 폭력적 육식주의의 모순점을 깨닫는 그 순간 이런 모순적인 환경을 개선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