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도 행복한 교실 독일교육 이야기
박성숙(무터킨더)지음
독일에 대한 믿음이 있다. 2차 세계대전 전범 국가였지만 그 잘못을 반성하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리고 동독과 서독의 통일이라는 어려운 일을 해내었고 2차세계대전 이후 경제성장도 탄탄하게 만들었다. 자동차하면 독일이며 독일제 기계는 무엇이든 믿음이 간다. 심지어 우리집에 우연하게 바르게 된 스킨 샘플조차 믿음직하고 솔직하여 어디것인가 보았더니 독일제였다. 독일 그렇다면 교육은 어떠할가? 체계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채점하고 우수하게 길러낼 것 같은 교육프로젝트 내 예상을 모두 뛰어넘는다. 독일은 대학교까지 평준화되어 우리나라처럼 청소년 시기에 경쟁해서 좋은 대학을 가야할 이유가 없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청소년시기에 행복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여유를 가지며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진다. 성교육조차 너무 똑부러지고 확실하게 하는 독일, 우리나라처럼 피할 것 다 피하고 돌려서 이야기 하는 성교육은 없다. 그래서 더욱 믿음이 가며 성소수자에 대한 교육까지 해준다고 한다. 이렇게 드러내 놓고 가르치는 성교육 그것은 갈수록 성경험이 중고등학교 시절로 앞당겨지는 우리나라도 어쩔수 없이 밟아가야 하는 수순일지도 모른다. “독일은 무엇이든 잘한다.” 라는 것은 분명 교육에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치열하게 공부하고 경쟁하고 시험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렸을 때부터 시작하는 철학이였다. 우리나라 철학교육은 지식암기 이해 수준 교육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학 시절에 교양으로 들었던 철학강의는 마치 고등학교 수업의 연장이였다. 깊은 사고력을 길러줘야하는 철학 강의가 공포의 암기 과목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나라는 학창시절 철학의 부재가 바로 사고력의 부재로 이어지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나 자신이나 사회현생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바로 이 사고력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다. 비판의식 결여, 사고력 결여, 창의성 결여, 모두가 우리나라 교육에서 사고력을 길러주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우리나라 교육의 근본 치료점을 살펴본 것 같았다. 다른 나라 교육을 무조건 좋다고만 할 수 없지만 배울 것은 배우는 것이 좋다.